2010. 1. 10. 20:17

아침에 삼성의 과도한 용병 의존도를 질타하는 기사를 보고 난 후 생각이 많아졌다.
팬층도 넓지 않고 죄 많은 구단이라고 항상 세간의 손가락질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구단이 그래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애저녁에 서른을 넘긴 노장들 중심의 얇은 선수층을 가지고도
수비와 조직력을 앞세워 늘 정상권을 지켜 왔다는 객관적인 성과와 그에 따른 자부심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경기가 끝나고 그 자부심과 명예에 금이 갔다.

내가 삼성이 지는 것을 불편해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 팀이 나 같은 오랜 팬이 아닌 평범한 일반인들에게
'좋아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무기가 깨졌다는 그 사실이 불편한 것이다.
'그래도 능력은 있는 팀 아니냐' 라고 말할 수 있는 논거가 빈약해졌다는 이야기다.
어제 경기만 놓고 보면 잘해서 재수없다 이런 게 아니라
용병 몰빵밖에 아는 게 없는 팀이라는 비아냥을 사도 할 말이 없다.
예전에 06-07 시즌이 끝나고 나서 내가 느꼈던 자괴감과 비슷한 감정을 순간 느꼈다.

고작 한 경기 졌다고 등돌릴 만큼 내 팬심이 빈약하고 줏대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나는 내 팀을 믿고, 무엇이든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항상 가지고 있다. 
기대할 것 따위 없는 막장구단이라고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세간의 비난 같은 건 그러려니 한 지 오래다.
하지만 뭔가 변화가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누굴 갈아치우라는 말이 아니다.
한번쯤 선수운용이나 전술운용에서 신선한 변화를 시도해 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삼성 공홈에 있는 명예기자 코너에 김세진을 인터뷰한 기사가 올라온 것을 본 적이 있다.
거기서 김세진이 이런 말을 했었다.

"...현재의 공격력을 따져봤을 때, 석진욱 선수나 손재홍 선수가 끝까지 이끌고 가긴 솔직히 힘듭니다. 체력적인 부담도 있고 부상도 있고... 경기라는 게 하면 할수록 감각이 생기기 때문에 블로킹이라든지 상대의 움직임이 금방 체크가 돼요. 4라운드, 5라운드 넘어갈 때쯤이면 몸이 자동화가 될 정도거든요. 그럼 이 선수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내가 대비를 한다, 안 한다가 몸에 익어요. 그래서 이런 패턴, 리듬을 좀 깨기 위해 선수교체를 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3라운드까지의 성적은 이만하면 준수하다. 
정규 우승은 욕심내지 말고, 적극적으로 패턴을 깨면서 해 보자.
상대 팀들이 감 못 잡게 하기 위해서라도 선수 교체도 자주 해 보고, 새로운 패턴도 많이 실험해 보자.
그래야 나중에 플옵 일정 소화할 때도 한결 수월할 거 아닌가.

솔직히 어제 보았던, 정신적 평정심을 완전히 잃은 듯한 그 오기서린 연속 토스는 다음 경기에선 정말 보고 싶지 않다.
이런 나보다 선수단 스스로가 더 느끼는 게 많겠지만...
그래도 괜시리 우울한 마음에 글 하나 끼적여 본다.

......개인적인 바람 하나만 보태자면
이제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보니 확실히 난 빠르거나 움직임이 많은 공격을 좋아하는 것 같다.
훌륭한 수비와 좋은 이단연결은 뭐 베이스고..
손재홍의 퀵오픈이나 지금은 은퇴한 장병철의 이동공격을 좋아했던 걸 생각하면...
(여배에선 황연주와 김혜진의 공격 스타일을 좋아하고...)
센터들의 속공도 좋아하고...
이런 플레이 좀 많이 보았으면 한다.
리시브가 안 되면 다 소용없는 얘기라지만
리시브 안 되면 무조건 용병 몰빵밖에 못하냐는 비아냥에 오기 받혀서라도
우리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거 보여 줬으면 좋겠다.
리시브가 좀 흔들려도 우리 얼마든지 할 거 다 할 줄 안다고...

아,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진 말고...;;

어쨌든 남은 라운드에선 보다 진일보한 삼성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