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25. 19:51

위태로운 이야기

Sport etc. 2011. 5. 25. 19:51
스포츠 아나운서,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다. 단지 유명해졌다는 착각에 빠져들기에 좋은 자리에 있을 뿐이다. 스포츠라는 견고한 바운더리 안에서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취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허우적대는 것,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의 현재 모습이다. (...) 하이힐 신은 여성 아나운서들이 야구장에 드나드는 것이 익숙해지고, 그들의 인기가 높아졌다고 해서 마치 야구장에 남녀 평등이 도래했다고 착각하지만 여전히 이곳은 여성에게 너무도 폭력적인 곳이다.
- 이지윤 前 KBSN 아나운서

"이곳은 여성에게 너무도 폭력적인 곳이다............."

저 마지막 문장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온다.

그 위태로운 시간들 속에서 여린 몸으로 홀로 버티면서도 끝까지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놓지 못했던 그녀가 너무나 안타깝다.

그런데 빈소를 찾은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지.

2군 선수 몇 명이 찾아갔다는 말은 언뜻 봤지만.

심지어 트위터나 미니홈피에 애도글 한 줄 올린 선수들조차 손에 꼽고, 그 선수들은 주위의 눈치를 무릅쓴 용자가 되는 현실.

배구도 그렇지만 그 종목도 여성팬들이 많던데... 그 사람들 다 실망하거나 분노해서 등돌리면 그 업보를 다 어찌 감당하려고.

하기사 그와중에 고인드립하는 넋빠진 개티즌들도 있더라마는...

(그러나 SNS가 그녀를 죽였네 이런 넋빠진 소리는 더 어이없다. 정확히는 SNS가 아니라 찌라시들이 더 문제 아님?)

그런데 그쪽 사람들, 대체 왜 8개 구단 전체가 다 그러는 거지?

발인때까지 아무도 안 왔다길래 경악을 금치 못했음. 근조화환도 8개 팀 중 딱 2팀만 보내 왔다 하고...

대체 뭐가 문제라서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양 그렇게 못본 척 하는 건지...

살아서도 그리 고립되어 있었는데 어찌 죽어서도 이리 서러운 운명인지...

어쩌면 그 유가족 분들은, 살아서 다시는 동네 배팅연습장조차 쳐다보지 않으실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여러 여성 아나운서들이 프로스포츠 현장을 누비고 있다.

왜 그들을 '사람'이나 '직업인'으로 보지 않고 '여신'이란 이름의 '눈요기'로만 보려 드는지 알 수 없다며,

살아 있는 처녀를 여신으로 삼아서 산 채로 인신공양을 하던 고대 잉카의 잔인한 풍습과 작금의 우리 사회가 뭐가 다르냐던 한 칼럼이 생각난다.

모두 남의 집 귀한 딸이고 누이다. 그리고 스포츠계와 언론계 사람들, 그대들과 함께 살아가는 동지다.

팬들에게는 그대들과 저쪽 세계 사이의 메신저다. 

일개 찌질이 배구팬이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부탁 하나 하자.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괜히 나도 죄지은 것만 같아 어쩔 줄 모르겠는 일개 동네 찌질이의 푸념이지만 한번만 귀기울여 들어주시라.

스포츠팬들, 스포츠인들, 언론인들, 네티즌들, 그래 우리 다들.

그녀들의 목소리와 스포츠인들에게 전달하는 질문에만, 그리고 그녀들의 손에 들린 자료 페이퍼 한 장, 이런 거에만 집중하자.

몸매드립 남친드립 이딴 거 좀 제발 하지 말고.

특히 언론사들 괜히 무슨 화보촬영 어쩌구저쩌구 이런 것 좀 들이대지 말고.



..............일이 있고 나서, 밤에 잠을 못 잤다. 그리고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남자 아나운서만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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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애도글을 올려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저 아무 말 없이 자숙하며 조용히 보내 드리는 게 예의일 것 같아 그냥 있었다. 

괜히 애꿎은 이탈리아 배구 리그 글만 올리고...

하지만 이 땅에 여전히 남아 현장에서 살아갈 그녀들만이라도 불행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되도않는 뻘글을 이리도 길게 썼다. 

떠나간 그녀는 고향 제주에서 비로소 안식을 얻었다 한다. 

이 너절한 홍진같은 세상 따위 다 잊어버리고, 부디 아무도 당신을 괴롭히지 않는 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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