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11. 15:35
2세트까지만 보고 때려쳤다.
꼭 삼성이 지고 있어서만이 아니라...
경기 내용이 너무 좋지 않아서다.
물론 아끼는 팀이 지고 있으면 볼맛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몰빵이라고 욕은 들어먹지만 내가 좋아하고 기억하는 삼성의 배구는 이렇게 졸렬하지 않았다.
보기엔 그냥 몰빵에 불과할지 몰라도
그 내면엔 아주 정교하고 안정적인 메커니즘과 세트플레이가 있는 게 삼성의 배구였다.
그냥 멍청한 뻥몰빵에 불과했다면 아무리 내가 사랑하는 팀이라고 해도 그렇게 진심으로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2주를 쉬었다고는 하나 이번 챔피언결정전 스케줄은 너무 잔혹하다.
7전 4선승제, 5일 동안 4경기, ...
어제는 풀세트 접전이었다. 2세트는 듀스까지 갔다. 30점 가량 갔을 것이다.
이해한다. 지치고 힘든 거 이해한다.
하지만 이렇게 졸렬하고 무기력해선 안 된다.
이기든 지든 어떻게든 욕먹게 되어 있는 삼성이니까 크게 신경쓰지도 않지만
적어도 경기 내용에 있어서 최소한의 자존심이나 품위는 지켜야 한다.
그런데 지금 삼성의 플레이에선 그게 보이질 않는다.
손재홍은 체감상 무득점에 가까웠다. 나중에 기록지 보니 6득점은 나왔다만...
두 명의 센터는 속공이 맞질 않아 자꾸 범실이 나온다.
가빈과 최태웅의 호흡도 전혀 맞지 않는다. 계산된 토스와 플레이가 나오질 않는다. 무식한 뻥몰빵밖에 안 보인다.
아포짓이 무슨 중앙후위에 이동공격이냐는 비웃음과 상관없이 나는 가빈과 최태웅이 빚어내는 훌륭한 세트플레이를 좋아했다.
그게 전혀 보이질 않는다.
토스 구질도 안 맞고 블로킹도 따돌리지 못하니 가빈의 범실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지금의 삼성은 가빈을 향한 뻥몰빵 말고는 다른 해결책이 전무하다.
무력하기 짝이 없는 삼성의 공격은 바로 현대의 킬블럭과 반격으로 이어진다.
어지간한 공격은 이제 다 받아올리는 현대다.
헤르난데스 보고 불혹 넘긴 할배니 뭐니 하지만 그는 노련미와 스피드를 갖추고 있는 여전히 건재한 라이트다.
블로킹에 능한 현대는 그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삼성의 공격을 차단시키고 착실하게 자신의 점수를 따간다.
강점이었던 수비에서조차 삼성은 현대에게 도리어 밀리고 있었다.
결국 오늘 삼성은 힘 한 번 못 쓰고 3-0으로 졌다.
세계 흐름과 동떨어진 구식배구라고 욕하고 비웃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른바 배구멸망설이 나오는 것도 봤다.
모두 다 삼성 탓이라고 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럼 지금 삼성이 처한 상황에서 뭘 어쩌냐'고 속으로 반문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런 경기력이라면......
저 말들에 대해 내가 반문할 수 있는 마지막 여지마저 사라지고 만다.
이런 졸렬한 경기를 누가 공들여 보려고 할까?
이 정도 경기밖에 못하는 팀을 누가 굳이 쉴드쳐 주고 사랑해 주려 할까?
이래 가지고서야 배구멸망설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어도 뭐라고 변명해 줄 여지가 없지 않은가?
단순히 몰빵을 한다고 이러는 게 아니다.
힘들더라도 제발 내실있고, 완성도 있는 경기를 보여 달라.
그게 배구판 말아먹는 개막장 뻥몰빵 집단이라는 비난으로부터 그나마 삼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보루다.
어차피 이번 시즌 시작할 때부터 우승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규리그 우승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정말 놀랍고도 꿈같은 기분으로 포스팅을 작성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제 내게 우승 여부나 경기 결과 같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룰 만큼 이루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의 이 경기 내용은 정말 아니다.
등돌릴 생각 따위 추호도 없는 오랜 골수빠인 나조차 납득시키지 못하는 이런 실망스런 경기는 오늘 한 번뿐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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