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FIVB 월드리그가 개막했다.
기대 반 근심 반으로 맞이한 쿠바와의 첫 경기.
경기는 예상 외로... 충격적인 3:0 완승.
오타가 아니다. 완패가 아니다.
완승이다.
http://www.fivb.org/vis_web/volley/WL2011/pdf/P3-005.pdf
한 세트만 따도 감지덕지일 줄 알았는데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이겨버려서 내가 다 놀랐다.
우리 국대가 세계대회에서 이런 적이 있었던가?
공격수들의 결정율도 다 좋고.
점유율도 대충 계산해 보니 전광인 36%, 최홍석 23%, 김정환 17%, 신영석 12% (이상 소수 첫째 자리 반올림 기준)
이렇게 나오던데.
레프트로 많이 몰리기는 했지만 레프트는 그저 리시브하는 존재로 치부하던 삼성의 배구에 익숙해져 있던 나로서는 실로 충격적이기까지 한 수치다.
(그렇다 난 이렇듯 구식배구에 많이도 익숙해져 있었다;;)
대학배구 좀 봤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전광인 타령을 해대길래 왜 그러나 했는데, 알 것 같았다.
타점도 높고 파워가 있더라. 배갤러들이 좋아할 만 했다.
특히 그렇게도 다들 목말라하던 빠른 중앙후위공격. 얘는 완벽하게 소화하더군... 유럽 선수들이 하는 것과 상당히 비슷했다.
좀 낮은 듯 그러나 순식간에 상대가 손도 못대게 내리꽂히는 스타일.
그런데 뒤로 갈수록 너무 얘한테만 몰아주는 건 아닌지 걱정이...
(뭐 가빈한테 70%씩 몰아주는 정신나간 팀의 팬이 할 소리는 아닌 줄로 사료되지만;;;)
하긴 거기엔 김정환의 공격 비중이 낮은 탓도 한몫 했을 것이다.
레프트의 전광인과 최홍석이 동시에 10득점씩 하는 새에 김정환은 혼자 5득점? 6득점? 이 정도 찍고 있었으니...
힘아리가 없어 보인다는 평이 있었는데 최근에 했다는 체중감량 탓인지...
그래도 박감독이 강조하는 빠른 배구를 전 세트 내내 감당하려면 몸이 날렵해야 견딜 수 있을 게다.
경기 끝나고 배갤은 한동안 신감까 모드로 돌변.
하지만 이젠 안타깝지도 않고 속쓰리지도 않고 오히려 속시원하다.
까려면 더 신랄하게 깠음 좋겠다.
누구처럼 게시물 1개당 달랑 한 줄씩 징징대는 소리로 도배질하지 말고 진중권씨마냥 아주 피도 눈물도 없이 날카롭게. 잔혹하고 섬뜩할 정도로.
작년 월드리그, 그리고 지난 시즌에서 조금이라도 변화를 시도하려는 모습을 보였다면
월드리그 첫 경기가 끝나자마자 순식간에 안주거리로 이리저리 씹히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자초한 바이니 나도 더 이상 팬으로서 쉴드 쳐주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동원할 수 있는 논리도 진작 다 바닥나서 해줄래야 해줄 수도 없고.
쉴드친다고 무리수 둬 봤자 배구 볼 줄 모르는 개념없는 인간이라고 덩달아 까이기밖에 더할까.
유럽식 스피드배구를 대표팀에서, 혹은 국내에서 단시간 내에 구현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던 그 말은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를 대체할 대안 역시 내놓지 못했다.
그냥 해온대로, 익숙한대로, 안전한 길만 고집했다. 하지만 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미 바닥까지 내려간 상황에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상태였다. 막다른 길에 몰리면 뒤돌아서 덤벼들어야 한다.
계속 막다른 벽만 두드려 봐야 벽이 무너지지도 않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결국 남은 건 사람들의 비웃음뿐이다.
박감독이 부임한 지 1개월 가량 된 걸로 기억한다.
그런대로 빠른 공격을 할 수 있는 선수들 혹은 아직 성장기가 안 끝난 대학 선수들이 주축인 덕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박감독이 요구한 빠른 공격을 어느 정도 소화해 냈다.
아직 세계 수준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친다고 팬들은 여전히 불만을 말한다.
하지만 박감독은 분명히 도전을 했다. 모험을 했다. 끊임없이 빠른 토스와 빠른 공격 쇄도를 요구했다.
쿠바가 내부 사정으로 상태가 엉망이었다고는 하지만 예전 같았으면 상상하기도 어려웠을 셧아웃을 해냈다.
시간이 조금 걸릴 수는 있어도 시도하고 도전하는 한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
지금까지 대표팀을 맡아 왔던 감독들은, 그리고 국내 리그에 있는 감독들은
당장 익숙한 것, 안전한 것만을 고집하며 실패를 두려워하고 포기하는 우를 범해 온 것은 아닌가.
팬들의 비난은 비난대로 받고 승률이라는 실리도 얻지 못했다.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뻔한 선택을 왜 지금껏 그토록 고집해 온 것인가?
에신은 진작에 현대를 버린 것 같았다.
나도 삼성에 대한 애정이 점점 옅어져 간다.
조짐은 작년 이맘때부터 감지되어 왔다. 그리고 점점 깊어 가다가 한동안 병세(?)가 완화되는가 싶더니 리그 후반쯤 되니까 급격히 악화되더라.
지금은 그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것 같다.
내가 좋아했고, 아꼈고, 애정했으며, 지금까지 소중하고 훌륭하다고 믿어왔던 존재들이 점점 빛을 잃고 무가치하게 변해 가는 것이 참 싫고 슬프다.
그러나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삼성에, 신감에, 그리고 다른 팀의 젊은 감독들에게 한가닥 희망을 걸고 싶다.
예전에 박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 국대 경기가 없을 때에는 국내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이것저것 알려주고 싶다는 뜻을 비치던데
감독들 중에서도 제일 어른이시겠다, 평시에 지도자들의 재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일선 감독들도 기꺼이 따라 주었으면 한다.
신감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오늘의 이 승리와, 경기 내용을 보고 국내 리그 감독들도 깨닫는 바가 있었으면 한다.
더욱이 지금 대표팀 선수들 대학생 몇 명 빼고는 다 프로 소속 아닌가.
대학생들도 오래지 않아 프로 선수가 될 테고.
프로와 국대 간의 공기차가 전혀 다르면 선수들이 배겨내질 못한다.
자칫 이도저도 아닌 선수로 전락할 수도 있고 장기적으로는 몸이 망가질 수도 있다.
선수들의 폼 유지를 위해서라도 이건 리그 감독들도 함께 도와 줘야 한다.
프로가 국대에 종속될 필요는 없지만 상호간 소통과 공조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 리그 팀들의 경기 스타일 역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고.
대표팀의 승리를 보고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언제 또 있었던가.
고마우면서도 마음 한켠이 복잡해지는 주말 밤이 이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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