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28. 22:24


 2007년 월드리그 이후 이렇게 통쾌했던 A매치 구경이 있었나,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쫄깃한 경기는 2007년 월드리그에서 우리나라가 브라질을 상대로 엎치락 뒷치락 풀셋까지 갔던 경기였다. 당시 23살이었던 박철우가 펄펄 날아다녔고 대학생 김요한,문성민을 어느 포지션에 두어야 하느냐 하는 행복한 고민에 그해 한일 탑매치 MVP를 수상했던 권영민도 토스웍이 절정일때였으니, 5세트까지 가서 패하면서도 나에겐 가장 재미있는 경기로 남아있다.
(물론 홈경기였고, 브라질 주축선수 한두명이 빠지긴 했다만, 스포츠에서 if라는건 없으니 패쓰-)


 매년 월드리그 대진이 최악이라면 최악이었으니, 올해 조편성을 보면서도 놀랍거나 걱정되지는 않았다.................... "온갖강호와 한데 섞여 좋지못한 성적을 거두는 경기" 임이 틀리진 않으니 그나마 좋은 조편성에 다치지않고 천천히 기량을 재어볼 수 있기를 바라는 순수한 빠심으로 기다릴 뿐. 이런 소녀같은 마음으로 경건하게 경기시청을 준비하니, 나는 0:3 패배라도 달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KBSn sports 채널이 아닌 SBS espn에서 중계해준다는 것 부터 굉장히 생소했다. 배구하면 kbsn, kbsn하면 배구(이건아닌가?ㅋㅋ) 였는데, 화면색이라던가 해설, 하다못해 세트가 끝나면 나오는 음악까지 노예가 되어버린 배구팬들에겐 굉장히 어색했을듯ㅋ 


슬슬 중계가 시작되니 서브연습 하는 각 나라 선수들 팔뚝두께부터 다르더라. 당장이라도 점프로 네트를 뛰어넘을꺼가튼 큐바 흑형들 사이에서 대표팀 꼬꼬마 전광인(유독 몸도 야리야리하더군 ㅠ)을 보고있자니..................... 블로킹이라도 하면 날아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음. (근데 의외로 큐바 첫서브가 이선규보다 더한 소녀서브 ㄷㄷ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학배구를 보지 않아도 이래저래 주워들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최홍석"이라는 이름은 심심치않게 들을 수 있다. 고등학교때부터 초 고교급 선수로 이름을 날린 최홍석, 학교선배인 문성민과 종종 비교되는 경우가 있던데 누가 우위인지는 확실히 말하지 못하겠지만 그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는 익히 느끼고 있었지만 전광인은 정말 새로운 얼굴의 등장이었다. 뉴스 댓글들 보니 전광인한테 기대하는 사람이 좀 있던데 사실 난 전광인이 선발로 뛸꺼라는 생각도 못했다. 주전들 다 빠졌다 해도 이번 신인왕에 빛나는 박준범이 버티고 있었기에...................


게다가 전광인의 첫 서브는 홈ㅋ런, 감독님도 굉장히 섬세한 미소를 날렸고 나도 뭐 귀엽다는 느낌이 들더라. 나보다 어린 국가대표의 등장이라니................... 사실 이 사실은 웃프다.


하지만 경기가 지속될수록 어째 김정환, 최홍석보다 전광인이 펄펄 날았다. 어차피 잃을 것 없는 대학2학년생에게 형님들보다 부담이 있었겠냐만은 일말의 긴장감은 첫 홈런으로 저 멀리 날려버리고 여기저기서 달려들어 때리는 모습, 틀어때리고 밀어때리며 득점 올리는 모습, 한번 터지니 승리를 결정지어버린 서브. 펑펑 터지는 큰 공격이었다면 보나마나 시차적응 정도는 무시하는 큡아선수들에게 반은 차단당했을텐데, 하드웨어로 커버하는게 높이라면,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는 스피드에서는 분명 전광인이 오늘 보여준 모습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빠른배구.

한국 배구팬들이 얼마나 열망하던 단어인가. 빠르게 달려와 중앙에서 시간차를 때리는 최홍석, 그와 별 차이없는 높이로 빠르게 후위공격을 하는 전광인, 그 후위공격의 힘을 지닌 신영석의 속공, 작은키를 스피드와 스냅으로 커버하는 김정환. 뉴스 댓글들중 가장 빵터졌던 댓글은 "감독님이 몇일전에 빠른배구 구사하시겠다더니, 이렇게 빨리 들고나올줄이야" 였다 ㅋㅋㅋ





간만에 호의적인 여론이 들끓으니 배빠로서 참 기분이 좋다. 우려를 가득 안고 시작한 대회에서 세계4위를 상대로 3:0이라니. 혹여나 1승11패로 대회를 마무리하더라도 한가지 얻은게 있어 다행일 듯 싶다.

한국 대표팀엔 거포 말고도 속사포도 존재한다는 사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