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12. 20:39

현대건설 황현주호가 순항을 하고 있다. 올 시즌 팀을 옮긴 황현주 감독은 지난해 10승 18패로 4위에 머물렀던 팀을 12승 1패, 1위로 올려놓으며 지도력을 재검증 받고 있다. 선수들의 구성은 크게 변한 것이 없지만 황현주라는 새로운 선장을 만나며 탄탄한 조직력과 화끈한 공격력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시즌 불같은 성격으로 친정팀 흥국생명과 두 번의 결별도 겪었다. 아픈만큼 성숙해진다고 황 감독 스스로도 “2번의 시련이 약이 됐다.” 고 말할 정도로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이다.
9연승을 달리며 역대 팀 최다 연승 기록도 갈아치우며 승승장구하는 황현주 감독을 8일 용인 숙소에서 만나보았다.

▶ 현대건설의 연승행진이 무섭다
- 솔직히 승수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초반 성적에 대해서는 아주 만족스럽다. 1,2라운드가 중요하다 생각했는데 선수들이 자신감을 회복하며 점차 좋아지고 있다. 우리 팀을 밖에서 상대팀으로 봤을 때도 공격력이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케니를 영입한 것도 결정타만 해결해 주면 잘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격수들의 잠재능력이 있어 리시브만 되면 언제든지 가운데서 (양)효진이나 (김)수지가 흔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올 시즌 윤혜숙을 주전으로 내 세운 것은 디펜스가 중요하기 때문에 주장으로 내세우며 경기에 투입시켰다.

▶ 현대건설이 선수들이 부쩍 많이 좋아진 것 같다.
- 시즌을 코앞에 두고도 스타팅 멤버를 발표하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서로 싸워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얘기했다. (한)수지도 그랬다. (염)혜선이가 국가대표에 차출되면서 더 많이 훈련했고, 그래도 어느정도 성장한 모습이 보였다. 물론 아직은 더 많이 보강해야 하지만. (웃음) 처음 팀에 왔을 때 선수들의 구성은 좋았지만 선수들의 불안한 마음은 어떻게 잡을 수 없었다. 매일 좋은 게임을 하면서도 승리를 못하니 선수들의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들어 있었다. 그런 것들을 풀어 나가기 위해서 많이 고민했고, 배구의 기본인 디펜스와 서브리시브에 중점을 두며 질적인 훈련 향상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경기는 선수들이 풀어 나가야 한다. 경기에 선수들을 믿고 기용하고, 선수들이 코트에서 잘 할 수 있도록 훈련 때 만들어주는 것이 내 역할인 것 같다.

▶ 조심스럽지만 팀에 오기 전 5개월 공백동안 어떻게 지냈나?
- 5개월동안 여행을 많이 다녔다. 진주, 남해 등 지인들을 찾아뵙고 중고 대회가 있는 곳을 꾸준히 찾아다니며 어린 선수들을 지켜봤다. 시즌 중반에는 선수들(흥국생명)이 잘 뛰고 있나 싶어 천안 경기장을 찾기도 했다. 물론 선수들이 부담스러울까 가까이서 보지는 못했지만 멀리서 나마 선수들을 응원했다.

▶ 현대건설 감독 공모에 넣은 것은 의외였다.
- 솔직히 공모에 넣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한 팀에서 두 번씩이나 옷을 벗는 게 쉽지는 않았다. 쉬는 동안 생각도 많았고, 내가 지도자로서 부족함을 느껴 연수를 계획 중이었다. 하지만 주위 지인들이 다시 한번 해보라고 많은 조언을 해줬다. 그래서 고민 끝에 지원하게 됐고, 팀에 합류하게 됐다.

▶ 흥국생명에서는 공격 위주의 플레이가 많았는데 현대건설에서는 수비에도 많은 부분 치우치고 있다.
- 배구는 디펜스를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선수의 높이를 살릴 수 있는 것도 디펜스가 기본이 되었을 때다. 내 생각으로는 내가 가는 팀에 선수들은 너무 힘들게 훈련 하는 것 같다. 항상 많은 양의 훈련을 동반했는데, 현대에 와서는 양보다 질적인 훈련을 선호하고 있다. 이런 훈련이 주효하면서 선수들도 많이 좋아진 것 같다.


▶ 디펜스에 강점을 두기 위해 이호 코치를 영입하게 된 것인가?
- 이 코치 영입 때 주위 모든 분들이 반대했다. 여자 팀이라는 게 워낙 경기 외적으로도 예민한 부분이 많다. 이 코치는 남자 팀에서만 생활하고 여자 팀(지도자) 경력도 없어서 다들 반대했다. 하지만 난 ‘왜 안되냐고만 생각하느냐, 될 것이다.’ 고 믿음을 가졌다. 이론으로는 모든 지도자들이 선수들을 지도할 수 있지만 최고의 리베로로 활약했던 이 코치의 수비 노하우는 이 코치만이 알려줄 수 있다. 수비 훈련 말고도 경기에 임하는 심리적인 부분이나 자세 같은 것은 이 코치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부분이 잘 맞아 떨어져 우리 팀 선수들의 수비도 좋아진 것 같다.

▶ 좋은 선수들을 많이 선발했었다.
- 기회가 닿아 좋은 선수들과 한 팀에서 많이 훈련했다. (김)수지, (김)연경이, (황)연주, (한)유미, 송이 등 어려서부터 꾸준히 지켜본 선수들과 프로에 와서도 한 솥밥도 먹었다.
(이)효희 같은 경우는 FA 계약에 실패했던 선수를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흥국에 데리고 왔었다. (이)영주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우)주리로만은 세터 운영이 안 될 것 같아서 한일전산 때부터 함께 했던 효희를 영입했다. 팀을 옮기고 많이 좋아졌고, 2년 동안 세터상 받았으면잘 하는 것 아니냐?(웃음)

▶ 그래도 선수 선발에 기준을 두는 것이 있다면?
- 우선 첫 번째는 실력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성격, 세 번째는 경기 외적인 생활면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시즌이 끝나면 초중고 경기는 꼭 보러 다닌다. 특히 고등학교 경기는 거의 다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린 선수들은 봄, 가을 크게 성장하는데 그 포인트가 다들 다르기 때문에 꾸준히 지켜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 예로 흥국생명 황연주가 그랬다. 연주가 졸업하는 해 봄까지만 해도 내가 뽑고 싶은 선수 기준에 이름도 올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10월 전국체전에 들어가면서 가능성이 눈에 확 들어오더라. 봄 때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잠재능력이 가을 훈련을 통해 두각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늦게 성장하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꾸준히 선수들을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

▶ 어느 자리에서든 선수들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 결국 경기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나는 훈련장에서는 마음껏 지시할 수 있지만 코트에서는 선수들이 얼만큼 해주느냐가 제일 크다. 열정을 갖고 선수들을 지도하고, 선수들과 함께 흘리는 땀이 성적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선수들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도 훈련장에서 선수들이 얼마만큼 고생을 하는지 이야기해주고 싶어서다. 훈련장에 와서 직접 보게되면 선수들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시즌 전 몇몇 다른 팀 선수들이 황현주 감독의 이적만으로도 현대건설이 좋아질 것이다 이야기했다. 선수들에게는 인기가 좋은 감독 같다.
- 그런 부분은 잘 모르겠다.(웃음) 오히려 내 밑에서 훈련하는 선수들은 고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이 두 가지만큼은 꼭 지킨다. 훈련은 훈련이고, 휴식은 휴식이다. 훈련장 안에서는 최선을 다해야 하고 많은 부분 지적하고 지도하지만, 코트를 떠나면 휴식시간에는 전혀 터치 하지 않는다. 훈련이 끝나면 나도 한사람의 사람으로 선수들의 배구 선배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휴식 시간에는 절대로 터치하지 않는다.

▶ 평소 가족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데.
- 배구 생각만 하다 보니 가족들 얘기는 거의 안한 것 같다. 벌써 아들(황진원)이 고등학교 2학년, 딸(황지윤)이 중학교 2학년이다. 어떻게 보면 이제 팀의 막내 선수들이 내 아들과 비슷한 나이가 됐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을 보면서도 참 애틋할 때도 있는 것 같다. 시즌 중에는 숙소에서 비시즌에는 지방 유소년 경기를 보러 다니니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적다. 최근에 새해 들어 아들과 통화하는데 “저 이제 18살이예요.” 라고 말하는데 ‘내 나이가 이렇게 들었나.’ 싶었다. 시간은 참 빠른 것 같다.

▶ 스스로가 생각하는 지도자 황현주와 인간 황현주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이제 지도자에 뛰어든 지 16년째다. 하지만 아직도 너무나 부족한 지도자다. 배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도 조금은 부족하다 생각해 선후배를 막론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나는 세터출신이기 때문에 공격수들의 맘을 전체적으로 읽을 순 없지만 공격수 출신 지도자들은 또 그 마음을 잘 알지 않겠나. 그래서 질문도하고 도움도 얻고 그런다. 반면 인간 황현주는 배구를 빼면 그다지 이야기 할게 없다. 내가 배구 코트에 서는 동안, 코트를 떠난다 해도 그 순간까지는 배구를 빼면 특별한 게 없는 사람이다.

▶ 지금 연승행진을 이어가고 있는데 올 시즌 현대건설의 목표는
- 우선 통합우승을 하면 좋겠다.(정규리그 1위, 우승) 물론 모든 팀들을 다 견제해야겠지만 KT&G와 흥국생명은 무시할 수 없는 팀이다. 초반 잘해온 것만큼 후반 들어서도 지금 페이스를 놓치지 않겠다.

▶ 장기적인 황현주 감독의 계획이 있다면
-아직 생각에만 그친 것이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유소년 선수들을 위해 힘써보고 싶다. 큰 틀만 구상했는데 꿈나무 친구들을 육성하며 지도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다.  

글, 사진 = KOVO 이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