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8. 19:25

후원의 목적

Gossip 2014. 11. 8. 19:25

단체종목 팬질할 때는 몰랐는데 개인종목들도 계속 지켜보다 보니 기업의 후원이란 게 이렇게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였던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남자배구 OK저축은행 팀이 처음에 우리캐피탈 간판 달고 등장했다가 재정난 때문에 이리 팔리고 저리 떠밀리고 하면서 고통받는 것을 보긴 했지만...

여기에 스포츠일반 섹션에서 개인종목과 관련된 이슈가 꾸준히 대중에 알려지다 보니 스포츠팬들 사이에서도 선수에 대한 후원...에 대한 생각이 많은가 보다. 

더욱이 마땅히 후원사가 줄을 이어도 모자랄 것 같은 선수에게 수 년째 별다른 메이저 후원사가 없다는 이야기가 계속 포털에 올라오고 있는 요즘은 더더욱...

이런 기사의 댓글 란에는 당연히 선수의 처지를 안타까워함과 동시에 기업들을 질타하고 심지어 외국 귀화마저 권하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안타까운 마음의 표현이겠지만... 사실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불편한 심기도 들곤 한다.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게 하나 있는 것 같다. 기업들은 왜 스포츠에 투자를 하고 운동선수를 후원하는가?

부(富)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맥락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고, 자사 및 브랜드의 홍보 수단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한마디로 대중의 이목을 끌고 그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꾸준히 들을 만한 일을 하면서 "나! 이런 기업이야~~~" 알아서 기어를 외치는 게

스포츠를 후원하는 기업들의 목적일 터이다. 

결국 철저히 계산적으로 움직인다는 얘긴데... 

아, 물론 예외는 있다. 

아이스하키에 미쳐서(...) 구단 운영은 기본이요 유망주 해외 유학에 핀란드 2부리그 공략에 

협회장직까지 떠맡아 동분서주하는 안양한라 구단주님이 대표적 사례;;;

이런 경우도 있긴 하지만 사실 이건 극히 예외고... 

역시 스포츠 후원은 복잡한 비즈니스적 계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 일이 실질적으로 기업에 별 금전적 수익이 없거나 오너 일가가 이런 쪽에 전혀 관심이 없다면 

밖에서 대중들(중에서도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소위 돈 안 되는 스포츠팬들)이 백날 떠들어봐야 기업들은 눈길도 주지 않을 것이다. 

그걸 가지고 정부에서 딱히 처벌을 하거나 불이익을 줄 명분 역시 없다. 법으로 뭘 규정해 놓은 것도 아니고, 어쨌거나 이 나라는 자유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결국 대중이 파이를 키워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은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 어찌보면 트렌드를 선도하는 건 기업들이라기보다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대중들이었다. 

기업들은 대중의 움직임의 향방을 예측하고 그에 맞춰 제품을 내고 마케팅을 할 뿐.

피겨가 아직 부족하나마 나름 유망한 기대주를 계속 내고 있는 것은 어쨌거나 이 분야가 꾸준히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고, 

충성도와 행동력이 높은 팬들이 두꺼운 인구층을 형성하고 이슈를 앞장서서 소비하고 관련 담론을 활발히 생산해 내면서 

피겨 선수들의 든든한 (물적) 기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올 2월에 은퇴했음에도 여전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여왕 폐하를 보라. 

그녀가 촬영한 잡지화보, 출연한 CF, 차기 동계올림픽 홍보대사 임명 소식 등, 그녀와 관련된 모든 것이 이슈가 되고 대중의 열광을 이끌어낸다.

날고긴다는 연예인들 중에서조차도 그 정도의 완판력을 자랑하는 캐릭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 엄청난 브랜드파워 뒤에는 소싯적부터 그녀를 성원해 왔던 수많은 팬들이 있다. 

때로는 과한 언사로 ~퀴라는 소리를 듣는 부류도 있지만 어쨌든 그들이 현재 그녀의 위상, 그리고 피겨라는 종목의 국내에서의 입지를 키워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자신이 사랑하는 선수가, 자신이 사랑하는 종목이 세상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한지(寒地)에서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아파하는 팬들이 있다면, 

우선 블로그든 SNS든 꾸준히 정보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목소리를 내 보는 게 어떨까. 

이 웹상 어딘가에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또 있다면 분명히 공명이 올 것이다. 댓글이든 멘션이든 또다른 블로그와 SNS 계정이든. 

그렇게 그 분야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계속 서로 공명하고, 그 규모가 확장되다 보면 제법 규모가 있는 전문 커뮤니티가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꼭 커뮤니티가 아니더라도 이 분야의 이런 이슈를 계속 소비하는 인구층이 있고 그들의 경제적 구매력이 상당하다는 게 업계에 감지되기 시작한다면 

기업들은 선수뿐만 아니라 종목 그 자체에도 기꺼이 돈줄을 풀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건 나만의 몽상이자 착각일까. 


아울러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천재적인 스타가 등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결국 그 종목의 맥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건 그 천재적인 스타의 뒤를 이어갈 수 있는, 

타고난 건 평범하지만 노력과 투자에 따라 성장할 수 있는 수많은 범재(凡才)들이다.

그리고 그런 범재들은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돈 안 되고 미래가 안 보이니 그 종목을 하지 않을 뿐이고, 

한다고 해도 환경 설정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니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할 수가 없는 것이다. 

'버림받은 영웅'을 일으켜 세우는 것 역시 중요하다.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영웅이 될 가능성을 가졌으나 성장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한 투자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혼자 힘으로 세계 탑의 자리까지 올라간 영웅들 역시 후배들이 자신과 똑같은 고통과 외로움을 겪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런 쪽에도 진지하게 주목하는 팬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당장 눈에 보이는 사안에 먼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점은 알겠지만, 

그래. 그게 마음에 걸린다. 종목에 대한, 미래에 대한 (실질적) 담론이 없다는 게.

끊임없이 스포츠판에 튀어나오는 후원 담론, 귀화 담론에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사실 이 지점에서 기인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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