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27. 21:07

오늘 경기 본 소감은 두 가지로 압축됨...

1. 배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2. 최천식 해설 쩐다(...)

대한항공은 전성기 삼성화재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니, 그보다 더 나은 듯.
수비도 아주 치밀했고 2단연결에 이은 강공도 모두 성공.
신진식 위원이 선정한 티핑포인트이기도 했지만 가빈의 강공을 곽승석이 코트 끝까지 뛰어가서 디그해낸 공을 에반이 때려 득점한 상황... 정말 발군이더란;;
여기에 한선수의 토스가 정말 재기발랄했다. 틈나는대로 속공 쓰고 퀵오픈, 후위공격 모두 자유자재로 사용하는데
이젠 젊은 세터군(群)에선 얘가 단연 No.1이구나 싶음.
그리고 수비 되고 토스 되고 공격수들 몸도 가볍고 하니까 선수 전원이 두루두루 득점...
김학민은 듣자하니 공격성공율이 70%가 넘었다던데. 아닌게아니라 때리는대로 다 들어감.
삼성 선수들이 전혀 블로킹 타이밍을 못 잡더만.

삼성화재는 저번 경기보단 제법 나아진 모습이었음. 집중력도 괜찮고 저번보단 범실이 확실히 적어진 느낌인데...
다만 세트 후반에 한두 개의 치명적인 범실로 무너지는 경향이 있었다.
2세트 막판에 토스범실과 상대 서브에이스로 연속 실점하면서 세트 내준 게 최악의 장면이었음.
여기에 한마디 더 보태자면(최천식 위원이 지적한 바이기도 하지만)
여오현 혼자 리시브하느라 터덕거리는 안습상황인 건 맞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공격이 되는 사람이 가빈 한 명밖에 없단 건 심히 문제다.
박철우는 1세트엔 잘 풀리는가 싶더니 2세트부턴 대책없이 곽승석한테 틀어막히고...
(사실 박철우가 파워풀한 스타일은 아니다. 스피드도 처지는 느낌이고 그렇다면 노련한 테크니션st로 가야 할 것 같은데
문제는 테크니션st와는 거리가 멀다;; 응용력이 떨어지는 인상을 받는다. 개선을 위한 연구를 요하는 바다)
김정훈은 공이 몇 개나 갔나 모르겠다. 센터들도 마찬가지...
3세트부턴 세터 우승진, 센터 지태환 이렇게 밀어넣고 본격 실험모드 들어가던데...
그래도 저번 경기보단 나아졌으니 경기를 거듭하다 보면 다들 조금씩 좋아지겠지. 그래도 속공은 좀 더 쓰시게.

앞서 '배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라고 써 놓았는데...
대한항공은 여러 명의 공격수들이 골고루 공격에 참여한 반면
삼성화재는 가빈 혼자 고군분투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다 보니 가빈의 심리적 부담도 올라갈 수밖에 없고... 그래서 범실이 늘고...
수비에서도 여오현 혼자 커버해야 하는 범위가 너무 넓어지다 보니 여오현도 다죽어가고 수비도 시망되고...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요샌 '백짓장도 맞들면 찢어진다'로 변질된 세상이라지만(존트 개인주의적인 세태를 반영한...)
배구는 백짓장이고 휴지조각이고간에 닥치고 여럿이 한 귀퉁이씩 잡아들어야 하는 종목이다.
그게 불가능한 게 지금의 삼성이고, 따라서 지금의 초라한 성적은 너무나 당연한 거다.

그리고 오늘 정말 인상적이었던 건 최천식 위원의 해설.
최천식 위원이 해설하는 중계방송을 열심히 보면 당신도 배구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함.
현직 지도자의 시선에서 해설하니까 선수들의 심리, 스파이크 폼, 블로킹 타이밍 등을 정말 세세하게 설명해 주니까 레알 좋음.
도서관에 가 보면 축구나 야구에 대한 대중서는 많아도 배구에 대한 책은 없는데
최위원이 배구 기술에 대한 대중서 한 권 써 주면 졸 좋을 거 같음. 말씀도 편안하게 잘하시는 것이...
솔까 닥치고 최위원 말 받아쓰면 양질의 배구리뷰 한 편 뚝딱 나올 듯.
마지막으로 중계방송 도중 나온 그의 멘트 한 마디를 적어 본다. 팀을 막론하고 공격수들이 새겨들을 얘기.

"공격수는 세터에게만 의지하면 안 됩니다. 세터도 잘해야 하지만, 공격수들도 자꾸 스스로 몸을 쓰면서 공격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