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5. 17:11

(미디어다음스포츠 배구섹션 첫화면 캡처)


스포츠포털의 배구섹션 제일 첫 화면에 아주 큼직하고 당당하게 몰.빵.배.구.라고 써붙였다...
언론이고 팬이고 일반인이고를 막론하고 모두들 몰빵배구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거 보니 그냥 웃프다;;;

물론 위 기사에 달린 댓글들의 내용이 호의적일 리 없다. (예로부터 포털 댓글은 그냥 악플 소굴이라는 말도 있다지만)
근데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 들어가 봐도 반응들이 비슷하다. 한마디로 좋은 소리는 못 듣는다는 얘기다;;

프로스포츠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이기는 것이라는 어느 분의 명언(...)이 있긴 했지만
이런 우승을 마냥 기뻐해야 하는 걸까 하는 자괴감이 자꾸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냥 관념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던 팀이 이런 식으로 여러 번 우승하던 팀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수 년 동안 그 팀의 팬으로 살면서 내가 느꼈던 상념들 때문에 그런다.
물론 팀이 우승하는 순간에는 마냥 기분이 좋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기쁨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면서 앞일 걱정부터 먼저 들곤 했다.
이래 가지고 내년에는 어떻게 꾸려 갈까, 저 외국인 선수 남기는 할까, 바뀌면 그 바뀐 선수는 지금 저 선수처럼 잘 할까,
다른 선수들은 지금보다 나아질 가망이 있는 것인가...

그리고 기쁨은 나눌수록 배가 된다는데 내 팀이 이겨도 오랫동안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줄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잠깐 버로우 풀고 나와서 씐 좀 내고는 다시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몇몇 팬들만 넷상에서 목격했을 뿐이었다.
혼자 좋아하다 김빠질 때 느끼는 그 우울함이란 게 사람 기분을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 것인지.

실제로 몰빵은 몰빵대로 하고 우승은 우승대로 못한 시즌이 있었는데 그땐 정말 암담하단 생각밖에 없었다.
경기는 경기대로 이렇게 해 놓고 그나마 이기지도 못했으니 이건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고 이게 무슨 꼴인가 하고.
그 시즌 당시 팀이 정규시즌 우승은 했었지만 그때도 팬들과 언론으로부터 좋은 평가는 못 받았었다.
보정성(?) 기사들이 몇 개 있긴 했지만 허울 좋은 소리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꽤 많이 봤다.
그래봤자 몰빵은 몰빵 아니냐고. 저렇게 우승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이게 단순히 치부할 말이 아닌 게 
평소 다른 종목의 스포츠나 드라마 등을 주로 보는 평범한 네티즌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에서 적잖이 나오던 말들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그 몰빵 강도가 늘면 늘었지 줄진 않았다. 그러면서 우승은 우승대로 하고...
그래서 심지어 '한국배구 앞길 가로막는 주범'이란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주공격수 혼자서 막히든 나가든 줄창 기계처럼 때려대는 경기 내용이 보기 재미있을 리도 없고.
재밌게 지는 것보단 재미없게 이기는 게 낫지 않냐는 의견도 있지만
요즘 같아선 재밌게 지고 사람들에게 인기 좀 얻는 편이 재미없게 이기고 외면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낫지 싶다.
물론 재미없게 지고 외면당하는 것이 제일 비참한 일이겠지만;;

가빈화재, 몬타공사... 넷상에 자주 오가는 별칭들이다.
팀이 아무리 우승을 해도 사람들은 오직 가빈과 몬타뇨만을 기억하고 칭송할 뿐,
그들이 정상에 올려놓은 팀에 대해선 그리 대단하게 생각지 않을 것이다.
좋은 용병 둬서 쉽게 우승한 팀이라고 생각하겠지. 
꼭 용병의 힘만으로 우승한 건 아니라고 아무리 반박을 한다고 해도 사람들의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우울한 건 그러거나 말거나 내년 시즌에도 이른바 몰빵배구는 여전히 계속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사실 이기는 데 이것보다 빠른 지름길은 없으니까.
어차피 구단이 흥행으로 수익 내서 독립적으로 먹고사는 구조도 아니고 모기업의 명예;;를 위해 존재하는 체제인데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우승만 할 수 있다면 뭔들 못하랴. 막말로 팬들 반응이 구단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고.

분명 변화의 바람이 필요한 시점이긴 한데, 그게 언제쯤에나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런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현명한 선택일까 하는 우울한 생각도 들고.

요샌 배구를 보면 볼수록 왜 자꾸 '우울'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