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16. 12:41

V-리그 남자부 우승팀이 확정된 지 4일이나 지나서야 올리는 남배 포스팅. 

그래도 한 시즌이 끝난 만큼 마무리는 지어야 할 것 같아서... 형식적으로나마 올려 봄. 


출처 : 미디어다음(http://sports.media.daum.net/volleyball/news/breaking/view.html?cateid=100033&newsid=20120413071215848&p=sportsdonga)


삼성화재의 프로 5연속 우승으로 올 시즌은 끝났고...

MVP는 역시 두말할 것 없이 가빈 슈미트. 

작년과의 차이가 있다면 플레이오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챔프전에 직행했다는 것과, 

완전 스윕으로 끝난 작년 챔프전과 달리 이번 챔프전은 대한항공이 한 경기를 따냈다는 것 정도?


'가빈화재'라는 말에 당사자들은 이의제기를 하지만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삼성에게 가빈은 그 자체가 전부였다. 가빈이 날면 쉽게 이기고, 가빈이 부진하면 어렵게 가거나 지고. 

공격면에서 삼성이 가빈 외에 의지할 곳이 거의 없었던 것은 자명한 사실 아닌가. 

이제 3번째 시즌을 마친 가빈. 

그가 한국에서 다시 4번째 겨울을 보낼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리고 설령 한국에 남겠다고 해도 이젠 내가 말리고 싶다. 

챔프 4차전을 앞두고 그의 트위터에 올라왔다는 'torture'(고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니 눈앞이 캄캄하다.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으면 고문이란 단어를 쓴단 말인가. 그것도 어지간해선 힘든 내색 하지도 않는 사람이. 

가빈을 보면 진심으로 한국을 좋아하는 게 느껴진다. 몸에 한국어 문신을 새겼다는 말도 들었는데...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만 계속 남을 수 있게 삼성도 이쯤해서 그만 가빈을 놓아 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아무리 오랜 시간 동안 좋은 드래프티를 얻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삼성 국내 공격수들의 공격력은 참으로 극악에 가깝다. 

가빈 혼자 60%가 넘는 공격 점유율을 찍고 그 다음에 보조하는 게 박철우, 그리고 아주 가끔 속공수 지태환 정도. 

하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공이 올라가면 결정을 내 줘야 하는데 박철우는 그 결정력이 너무 떨어진다. 

그렇다고 다른 윙들 중에 결정력 있는 선수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남배 중계 관전을 완전히 끊기 전에 올렸던 포스팅에 '이젠 얘네들 공격하는 방법도 잊어버린 것 같다'는 내용의 문장을 썼던 기억이 난다. 

서브도 마찬가지. 스파이크서브건 플로터건 상대 리시브 라인을 흔들 만한 위력이 안 보인다. 들어가기나 하면 다행인 서브도 적지 않았고. (여기서 또 박철우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만 심도있게 살피고 개선해도 지금보단 훨씬 나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고쳐질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아니 고칠 의지조차 별로 없어 보이고. 


나는 원래 삼성을 좋아했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지금도 '사람'으로서의 삼성 선수들은 좋아한다. 

신감독도 좋아한다. 

그 흔들림없는 차분함과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면모를 좋아한다. 

하지만 삼성의 '배구'를 마냥 좋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사람의 공격수와 여섯 명의 수비수로 이루어진 배구, 

지금 당장 이 리그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계속 통할지도 의문이고 바람직한 방향의 전술도 아니다. 

이미 V리그에서 강력한 토종 공격수, 특히 라이트의 이름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이렇게 되면 유소년 배구층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누가 라이트를 하려 하겠나? 

더욱이 국내 공격수에게 공격보다 수비가 더 요구되는 리그 성격상 앞으로 젊은 선수층에서 수비수들은 계속 배출될지 몰라도 대형 공격수는 씨가 말라 갈 것이다.

내가 제목에 '마냥 기뻐하진 못하겠다'고 쓴 이유도 그 때문이다. 


어차피 삼성은 일개 팀일 뿐이다. 국가대표팀도 아니고 국대 경기력 강화 프로젝트 연구소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하나의 프로팀이다. 리그 성적 좋으면 멤버들 연봉 올라가고 리그 성적 망하면 감독 모가지 날라가는 그런 팀. 

그런 팀에게 한국배구에 산적한 문제에 관한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뒤집어씌울 수는 없다. 

삼성에게 그래야 할 의무도 없고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현재 삼성의 배구 스타일에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꼭 이 길밖에 없는지, 이 길이 아니면 우승을 못하는 건지, 

현재의 '1인공격' 시스템을 극복한 새로운 스타일을 볼 날은 영영 없는 것인지, 

이대로 아무 변화도 발전도 없이 똑같은 배구를 지켜봐야 하는 것인지. 


사실 나는 리그 중반쯤에 변화에 대한 모든 기대를 버렸다. 

그 전부터도 띄엄띄엄 보는 정도였지만 어느 순간 남배는 아예 안 보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팀들의 플레이가 어떤 식이었는지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내가 다시 V리그 남배 포스팅을 상세히 할 날이 올 수는 있을까. 

지금으로선 확답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