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30. 11:54

일주일째 쑨양의 도핑 사건으로 수영계가 시끄럽다. 

보통 협심증 치료제로 사용된다는, 그러나 2014년 1월을 기준으로 WADA(세계반도핑기구) 지정 금지약물이 된 트리메타지딘이라는 혈관확장제 성분이

지난 2014년 5월 중국수영선수권 직후 채취된 도핑 샘플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는데 

이 사실을 중국수영총국에서는 WADA나 FINA에 보고하지도 않고 

자국 내부에서만 슬그머니 3개월 출전정지(그런데 이 기간에 별다른 대회나 있긴 했나?)와 벌금 5000위안(한화 90만원 가량) 정도의 경징계만 내리고 

입을 꾹 닫았는데...

이 사실이 지난 11월 24일에 중국 신화통신을 통해 알려지면서 전세계 수영팬들이 발칵 뒤집어진 상황.


도핑이라니.

도대체 그 실력에 뭐가 아쉬워서 그것도 무난히 타이틀 먹고도 남을 국내대회에서... 

물론 당사자의 해명처럼 원래 있던 심장의 지병이 도져서 치료 차원에서 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소명하면서 처방전까지 제출했다고 하니. 

주치의는 자격정지 1년에 처해졌다고 하는데...

(그런데 주치의는 자격정지기간 중임에도 전담 스폰서팀 직원 자격으로 인천AG에 편법 참여했다. 그래서 이 건도 국제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중)

하지만 문제의 약은 올해부터 WADA 금지약물목록에 올라가는 걸로 이미 작년 9월부터 공지가 되고 있었는데 그럼 잘 살피고 주의를 했어야지. 

(그런데 실은 중국 국내에서 새로운 금지약물에 대한 업데이트와 공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어쨌든 이번 사건으로 쑨양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아시아 출신의 역대급 최장거리 수영 챔피언'이라는 명성은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의 실력 자체까지 의심하는 시선이 늘고 있고, 심지어는 'cheater', '저 사기꾼이 그랜트 해켓의 타이틀을 뺏어간 놈이냐?'라는 비난까지 쏟아지고 있는 상황.

비록 타국 선수이고 사생활에 문제가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솔직히 개인적으로 실력을 인정하고 있던 선수 중 한 명인데 이런 식으로 제 명예를 스스로 땅에 처박는 꼴을 보니 

심란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난 당사자보다도 중국 수영총국의 처신이 더 이해가 안 갔다. 아니 제일 이해가 안 간다. 

도핑.... 그래 사실 스포츠판에 은근 흔해빠진 게 도핑인 것도 사실이지. 러시아의 에피모바 사례도 있고...

그런데 중국의 경우엔 행정이 너무나 일을 키웠다. 

이건 도대체 다른 국가의 경우엔 상상도 할 수 없는 배짱갑 행보를 보였는데 

차라리 애초에 도핑 결과 나오자마자 바로 외부 발표하고 6개월 이상 출전정지 징계 때리고 AG대표에서 제외시키고 끝났으면 

이렇게까지 사태가 확산이 안 됐다. 

그런데 이건 행정측에서 일을 되려 더 키워 버렸다. FINA에조차 제때 보고를 하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스리슬쩍 출전정지 3개월을 보냈다. 이게 징계야 뭐야. 

게다가 도핑 사실이 적발되면 어느 종목이든 WADA에 20일 이내에 보고를 하게 되어 있는데 그마저도 쿨하게 씹어 버렸다.

저들 딴에는 어떻게든 인천AG에 출전시키려고 수를 쓴 것 같은데 이건 선수를 위해서도 자국의 명예를 위해서도 절대 좋은 처신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국제 사기꾼이 된 꼴 아닌가.

이제 국제 수영계의 누가 중국 수영총국에 신뢰를 보이겠으며 중국의 수영선수들을 오롯이 인정할 수 있겠냐고? 다 약쟁이 취급할 텐데. 

지금 해외 팬들 중에는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에도 도핑 의혹을 샀던 적이 있는 예스원까지 거론하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다.

수영 좀 안다는 국내 모 커뮤니티는(그 커뮤니티 자체가 원래 일반 동호인 얘기 위주고 프로수영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 곳이기는 하지만)

이 사안에 대해 '중국 원래 약쟁이 소굴인 거 몰랐냐?' 이런 심드렁한 반응만 보이고 말았다;;


WADA에서 CAS(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한다는 말도 있고 앞으로 추이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 사안이 어떻게 마무리되든 이미 쑨양은 더 이상 팬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선수가 되어 버렸다. 

정말 자신의 실력만으로 타이틀을 따내고 기록을 세워도, '그래봤자 약빨 아냐?' 라는 의혹을 항상 달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건 다른 중국 선수들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젠 중국 국적의 수영선수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영원한 주홍글씨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처참한 상황을 자초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중국 수영총국이다. 

선수도 당연히 잘못했지만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징계를 내리지 않고 선수 싸고 돌기에 바빴던 총국이 더 문제다. 

평소에는 모든 선수를 공정하게 관리 통제하고 문제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엄중하게 선수들을 단속하라고 연맹이나 총국이란 게 있는 거다. 

그런데 이들은 그 의무를 방기해 버렸다. 단지 아시안게임 성적 그 하나를 위해서. 

국가 단위로 이렇게 뻔뻔하게 나와 버리는데 외부 시선이 곱지 않게 되는 건 당연한 귀결 아닌가? 

이제 이들은 어디 가서 변명도 못한다. 

90년대 마군단 사태까지 언급되는 마당인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행태는 결코 선수를 위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선수를 망치는 거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정말로 완전히 망친 꼴이 됐다. 이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 지금, 그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나치 출신임을 감춘 채 UN사무총장을 거쳐 오스트리아의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쿠르트 발트하임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발트하임은 '어쩔 수 없이 나치에 가담했다'는 동정론을 국민으로부터 이끌어내 결국 오스트리아의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가 재임하는 동안 오스트리아는 철저하게 국제적 왕따가 되어야 했다. 심지어 미국은 아예 발트하임을 미국 입국 금지인물 명단에 올려 버렸다. 

결국 발트하임과 오스트리아는 국제적으로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페르소나 논 그라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 국제 수영계가 쑨양을, 그리고 중국 수영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렇다. 

수영계의 페르소나 논 그라타가 되어 버린 선수. 

쑨양 자신도 잘못했지만 일을 이렇게 키운 중국 수영총국에도 나는 책임을 묻고 싶다. 

아무 지원도 안 해 주면서 선수에게 빨대 꽂고 돈 빼먹고 자기들 으스대는 데 이용하려고만 드는 흔한 반도의 연맹도 문제지만 

할 짓 못할 짓도 분간 못하고 자기들끼리 싸고돌면서 꼼수 쓰다가 일 키우는 대륙의 연맹도 정상으로는 안 보인다. 아니 이런 조직이 오히려 더 치명적이다.


한동안 맨정신으로 수영 못 볼 것 같다. 이거 영 기분 뭐같아서 수영 보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도하 쇼트코스 세계선수권을 보겠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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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2월 3일, 호주 수영연맹에서 쑨양의 호주 전지훈련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호주에 있는 엘리트 수영클럽에 쑨양이 출입하는 것을 불허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전지훈련차 호주를 방문하는 모든 외국인 수영선수들은 반드시 호주 반도핑기구(ASADA)에 신변을 등록해야 한다. 

한마디로 호주에서 전지훈련을 하는 외국인 선수는 모두 호주 반도핑기구의 수시 도핑테스트를 받아야 한다는 것.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중국 측도 이제야 좀 실감이 갈까. 

《Swimming World Magazine》에서 진행한 인터넷 설문조사에서 '쑨양의 2012 런던 올림픽 성적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다'는 응답이 71%나 나온 게 

그나마 쑨양에게는 작은 위로가 될지도........